내가 만난 환자

글 | Medical Director, Celgene Co. 이수현

저자소개

물리학 사회학 공부를 하고 유방암 환자를 진료하는 종양내과 의사가 됨.
10년전 유방암 치료를 받는 환자를 위한 안내서 ‘한쪽 가슴으로 사랑하기’를 유방암에 걸린 후배와 같이 집필했는데 올 봄에 개정판을 낼 예정임.
지금은 제약회사에서 일하고 있음. 




Beyond uncertainty
불확실성을 넘어서


9년전 가을. 젊은 부부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연구원 생활을 막 시작했는데 부인이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을 진단받고 서둘러 한국으로 돌아왔다. 작은 nodule 들이 폐 전체에 퍼져있어 말을 몰아서 하면 숨이 가쁘다. 나는 4기 유방암의 무게에 눌려 아무 말도 못하는 부부를 앞에 두고 ‘표준치료를 해도 되지만, 좋은 효과가 기대되는 약제가 포함된 실험군에 포함되어 추가적인 도움을 받을 수도 있으니 임상연구에 참여해 보시라’고 설명하는 fellow 로 그들을 만났다(남편의 연구분야가 HER2 유전자 였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내 설명이 얼마나 미심쩍었을까?). 그들은 내 말을 완전히 신뢰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별 질문없이 연구에 동의해 주었다. 4기 유방암의 예후에 대해 설명을 들은 젊은 엄마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그녀 : 선생님, 아직 아이들이 어린데, 제가 앞으로 얼마나 살수 있을까요? 남편에게도 대비를 하라고 말해야 할 것 같아서요.
나 : 이제 치료 시작이니 아직 그런 얘기를 할 단계는 아니에요. 치료 반응을 보면서 나중에 생각해도 늦지 않아요.

나는 나보다 어린 30대 젊은 엄마를 앞에 두고, 불확실한 미래와 죽음에 대한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몇달이 지나 나는 임상조교수가 되어 외래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그녀는 임상연구의 실험군으로 시험약제의 부작용 때문에 고생이 많았지만 종양크기도 많이 줄고 폐전이도 거의 잘 보이지 않는 상태로 잘 지내고 있었다. 

나 : 몇 달만에 많이 좋아지셨네요.
그녀 : 네, 치료가 잘 되고 있어서 다행이에요. 이제 숨도 안 차고 유방 종양도 거의 만져지지 않아요.

환하게 웃는 그녀가 이쁘다. 

나 : 항암치료약들이 피부에 안 좋은데, 어쩜 이렇게 피부가 좋으세요?
그녀 : 밤에 보습크림 많이 바르고 있어요.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 피부는 클린징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그녀는 다음 외래에서 클린징 세트 화장품을 선물로 주었다. 치료 반응이 좋으니 일단 마음은 좋다. 클린징 비누를 쓸 때마다 그녀 생각이 났다. 그녀는 임상연구 스케줄에 맞춰 매주 병원에 와야 하기 때문에 자주 만났다. 처음 병을 진단받았을 때나 지금이나 그녀는 젊고 예쁘고 우아하고 차분하고 말이 별로 없었다. 처음에는 그녀의 눈빛이 슬퍼 보였는데 이제 뭔가 희망을 기대하는 듯한 눈빛으로 바뀐 것이 달라진 점이다. 유방이나 폐가 거의 다 좋아졌는데 유두에서 가끔 bloody discharge 가 나왔다 말다 한다. 조직검사도 여러번 하고, 피부과 진료를 보고, 2년 넘게 매주 그녀의 유방을 들여다 보고 만져 보며 고민을 했지만 뾰족한 진단이 나오지 않았다. 

그녀 : 아직 암세포가 완전히 없어진건 아닌가 봐요.
나 : 조직검사를 세번이나 했는데 암세포가 나온 건 아니니 다행입니다. 그렇지만 마음이 놓이지는 않네요.
그녀 : 에이, 당연히 암이겠죠.

그녀는 자신이 4기 암환자이고, 자신의 삶이 제한된 시간에 놓여있고, 하루라도 더 살아서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엄마의 역할에 완전히 적응해 있었다. 이 불확실한 상황을 확실하게 규정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그냥 오늘 하루, 이번 한달을 무탈하게 잘 살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매주 병원 다니는 거 힘들지 않냐고 했더니, 이렇게 다닐 수 있는게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라고 했다.

그녀와 3년이 넘는 인연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외래, 그녀는 나에게 에센스 세트를 선물해 주었다. 

그녀 : 선생님은 늘 제 피부가 좋다며 부러워 하셨잖아요. 저 이거 발라요. 흡수력이 좋아서 안 끈적이고 보습효과도 좋아요.
나 : 이제 병은 거의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되었으니, 뭔가 일을 시작해 보셔도 될거 같아요.
그녀 : 그래서 영어 기간제 교사를 해보려구요. 계약 기간이 길지 않아서 부담이 없어요.

언제 병이 나빠질지 모르니 새로운 일을 하기에 아직 마음이 편치 않은가 보다.
나는 병원을 나온 이후에도 그녀와 가끔 문자를 했다. 나는 치료는 어떤지 안부를 묻고, 그녀는 말 안듣는 남편과 중이병 아들 흉을 보았다. 카카오톡으로 커피 선물도 보내며 서로를 격려했다. 그녀가 참여한 임상연구는 시험 약제를 더해도 표준치료에 비해 성적이 좋지 않다는 negative 결과를 냈지만, 병이 진행되지 않은 그녀와 같은 형편의 환자들에게 무상으로 약을 5년간 제공해 주었다. 그러나 임상연구 종료의 원칙에 따라 약 공급이 중단되었고 그녀도 치료를 중단하게 되었다. 

그녀 : 선생님, 5년간 맞던 약을 끊고 나서 6개월 만에 유방에서 뭐가 만져져서 검사해 봤는데 재발이래요.

완치가 된 건가 어렴풋이 믿고 있었던 마음이 순식간에 부서진다. 

나: 예전에 폐에 있었던 전이들은 어떻대요?
그녀 : 다행히 폐는 깨끗하대요.

이 상황을 예전 유방암의 재발로 봐야 할지, 새로운 유방암이 생긴 것으로 간주하고 치료해야 할지 애매한 상황이었다. 나는 직접 환자를 본 것도 아니고, 검사결과를 본 것도 아니니 뭐라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녀는 몇 일 간격으로 문자를 보내 주치의에게 들은 설명을 전해 준다. 나를 의사라기 보다는 언니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나 : 마음은 괜찮으세요?
그녀 : 5년전 첨 진단받을 때 보다는 괜찮아요. 그 사이에 아이들도 많이 크고 남편도 직장에 자리를 잡았으니까요. 제가 죽어도 어떻게든 살겠죠. 뭐….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목소리에는 눈물 가득이다. 

나 : 지난번 치료가 잘 된 것처럼, 이번에도 잘 될거에요. 원래 공부 잘 하는 사람이 치료 성적도 좋아요.

말도 안되는 위로를 전한다.
그녀는 유방수술, 항암치료, 방사선치료, 표적치료를 다시 받았다. 새로운 유방암으로 간주하고 치료하기로 한 모양이다. 치료가 끝났다고 해도 이게 완치인지 명확하지 않다. 유방암 치료를 마치고 만난 그녀는 여전히 말이 없고 예쁘고 우아했고 차분했다. 다시 연구원 생활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녀 :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려구요. 다시 연구원 생활 시작했는데 뭔가 설렘이 있고 좋아요.
제 전공 분야에서 많이 뒤쳐졌지만, 그만큼 더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나 : 실험하는 방법 다 잊어 버리지 않았나요? 이제 논문도 다시 쓰셔야 겠네요?
그녀 : 공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니 정말 기뻐요. 사는데 까지 즐겁고 행복하게 살려구요.
나 : 아들놈 말 안듣는 건 좀 나아졌나요?
그녀: “아휴, 나아지겠어요? 그냥 제가 받아들여야죠.”

그녀는 구질구질한 일상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했다. 

 

저자소개

물리학 사회학 공부를 하고 유방암 환자를 진료하는 종양내과 의사가 됨.
10년전 유방암 치료를 받는 환자를 위한 안내서 ‘한쪽 가슴으로 사랑하기’를 유방암에 걸린 후배와 같이 집필했는데 올 봄에 개정판을 낼 예정임.
지금은 제약회사에서 일하고 있음. 




Beyond uncertainty
불확실성을 넘어서


9년전 가을. 젊은 부부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연구원 생활을 막 시작했는데 부인이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을 진단받고 서둘러 한국으로 돌아왔다. 작은 nodule 들이 폐 전체에 퍼져있어 말을 몰아서 하면 숨이 가쁘다. 나는 4기 유방암의 무게에 눌려 아무 말도 못하는 부부를 앞에 두고 ‘표준치료를 해도 되지만, 좋은 효과가 기대되는 약제가 포함된 실험군에 포함되어 추가적인 도움을 받을 수도 있으니 임상연구에 참여해 보시라’고 설명하는 fellow 로 그들을 만났다(남편의 연구분야가 HER2 유전자 였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내 설명이 얼마나 미심쩍었을까?). 그들은 내 말을 완전히 신뢰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별 질문없이 연구에 동의해 주었다. 4기 유방암의 예후에 대해 설명을 들은 젊은 엄마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그녀 : 선생님, 아직 아이들이 어린데, 제가 앞으로 얼마나 살수 있을까요? 남편에게도 대비를 하라고 말해야 할 것 같아서요.
나 : 이제 치료 시작이니 아직 그런 얘기를 할 단계는 아니에요. 치료 반응을 보면서 나중에 생각해도 늦지 않아요.

나는 나보다 어린 30대 젊은 엄마를 앞에 두고, 불확실한 미래와 죽음에 대한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몇달이 지나 나는 임상조교수가 되어 외래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그녀는 임상연구의 실험군으로 시험약제의 부작용 때문에 고생이 많았지만 종양크기도 많이 줄고 폐전이도 거의 잘 보이지 않는 상태로 잘 지내고 있었다. 

나 : 몇 달만에 많이 좋아지셨네요.
그녀 : 네, 치료가 잘 되고 있어서 다행이에요. 이제 숨도 안 차고 유방 종양도 거의 만져지지 않아요.

환하게 웃는 그녀가 이쁘다. 

나 : 항암치료약들이 피부에 안 좋은데, 어쩜 이렇게 피부가 좋으세요?
그녀 : 밤에 보습크림 많이 바르고 있어요.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 피부는 클린징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그녀는 다음 외래에서 클린징 세트 화장품을 선물로 주었다. 치료 반응이 좋으니 일단 마음은 좋다. 클린징 비누를 쓸 때마다 그녀 생각이 났다. 그녀는 임상연구 스케줄에 맞춰 매주 병원에 와야 하기 때문에 자주 만났다. 처음 병을 진단받았을 때나 지금이나 그녀는 젊고 예쁘고 우아하고 차분하고 말이 별로 없었다. 처음에는 그녀의 눈빛이 슬퍼 보였는데 이제 뭔가 희망을 기대하는 듯한 눈빛으로 바뀐 것이 달라진 점이다. 유방이나 폐가 거의 다 좋아졌는데 유두에서 가끔 bloody discharge 가 나왔다 말다 한다. 조직검사도 여러번 하고, 피부과 진료를 보고, 2년 넘게 매주 그녀의 유방을 들여다 보고 만져 보며 고민을 했지만 뾰족한 진단이 나오지 않았다. 

그녀 : 아직 암세포가 완전히 없어진건 아닌가 봐요.
나 : 조직검사를 세번이나 했는데 암세포가 나온 건 아니니 다행입니다. 그렇지만 마음이 놓이지는 않네요.
그녀 : 에이, 당연히 암이겠죠.

그녀는 자신이 4기 암환자이고, 자신의 삶이 제한된 시간에 놓여있고, 하루라도 더 살아서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엄마의 역할에 완전히 적응해 있었다. 이 불확실한 상황을 확실하게 규정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그냥 오늘 하루, 이번 한달을 무탈하게 잘 살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매주 병원 다니는 거 힘들지 않냐고 했더니, 이렇게 다닐 수 있는게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라고 했다.

그녀와 3년이 넘는 인연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외래, 그녀는 나에게 에센스 세트를 선물해 주었다. 

그녀 : 선생님은 늘 제 피부가 좋다며 부러워 하셨잖아요. 저 이거 발라요. 흡수력이 좋아서 안 끈적이고 보습효과도 좋아요.
나 : 이제 병은 거의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되었으니, 뭔가 일을 시작해 보셔도 될거 같아요.
그녀 : 그래서 영어 기간제 교사를 해보려구요. 계약 기간이 길지 않아서 부담이 없어요.

언제 병이 나빠질지 모르니 새로운 일을 하기에 아직 마음이 편치 않은가 보다.
나는 병원을 나온 이후에도 그녀와 가끔 문자를 했다. 나는 치료는 어떤지 안부를 묻고, 그녀는 말 안듣는 남편과 중이병 아들 흉을 보았다. 카카오톡으로 커피 선물도 보내며 서로를 격려했다. 그녀가 참여한 임상연구는 시험 약제를 더해도 표준치료에 비해 성적이 좋지 않다는 negative 결과를 냈지만, 병이 진행되지 않은 그녀와 같은 형편의 환자들에게 무상으로 약을 5년간 제공해 주었다. 그러나 임상연구 종료의 원칙에 따라 약 공급이 중단되었고 그녀도 치료를 중단하게 되었다. 

그녀 : 선생님, 5년간 맞던 약을 끊고 나서 6개월 만에 유방에서 뭐가 만져져서 검사해 봤는데 재발이래요.

완치가 된 건가 어렴풋이 믿고 있었던 마음이 순식간에 부서진다. 

나: 예전에 폐에 있었던 전이들은 어떻대요?
그녀 : 다행히 폐는 깨끗하대요.

이 상황을 예전 유방암의 재발로 봐야 할지, 새로운 유방암이 생긴 것으로 간주하고 치료해야 할지 애매한 상황이었다. 나는 직접 환자를 본 것도 아니고, 검사결과를 본 것도 아니니 뭐라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녀는 몇 일 간격으로 문자를 보내 주치의에게 들은 설명을 전해 준다. 나를 의사라기 보다는 언니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나 : 마음은 괜찮으세요?
그녀 : 5년전 첨 진단받을 때 보다는 괜찮아요. 그 사이에 아이들도 많이 크고 남편도 직장에 자리를 잡았으니까요. 제가 죽어도 어떻게든 살겠죠. 뭐….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목소리에는 눈물 가득이다. 

나 : 지난번 치료가 잘 된 것처럼, 이번에도 잘 될거에요. 원래 공부 잘 하는 사람이 치료 성적도 좋아요.

말도 안되는 위로를 전한다.
그녀는 유방수술, 항암치료, 방사선치료, 표적치료를 다시 받았다. 새로운 유방암으로 간주하고 치료하기로 한 모양이다. 치료가 끝났다고 해도 이게 완치인지 명확하지 않다. 유방암 치료를 마치고 만난 그녀는 여전히 말이 없고 예쁘고 우아했고 차분했다. 다시 연구원 생활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녀 :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려구요. 다시 연구원 생활 시작했는데 뭔가 설렘이 있고 좋아요.
제 전공 분야에서 많이 뒤쳐졌지만, 그만큼 더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나 : 실험하는 방법 다 잊어 버리지 않았나요? 이제 논문도 다시 쓰셔야 겠네요?
그녀 : 공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니 정말 기뻐요. 사는데 까지 즐겁고 행복하게 살려구요.
나 : 아들놈 말 안듣는 건 좀 나아졌나요?
그녀: “아휴, 나아지겠어요? 그냥 제가 받아들여야죠.”

그녀는 구질구질한 일상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