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수기

글 | 인제대학교 일산백병원 김재일

아직 아침 저녁으로는 추위가 느껴지지만, 한층 봄에 가까워진 3월 초입니다. 1년 전 호주로 연수를 간다고 말씀드리면 의아해하시던 여러 선생님들이 기억 나는데, 벌써 연수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지 두 달 가까이 되었습니다. 다소 생소한 연수지인 MSPGH와 가족과 함께 한 호주 멜번의 생활을 떠올리며 연수기를 적어 보았습니다.

 

1. 연수지 선정과 연수 준비

우리 외과를 포함하여 대부분 선생님들의 연수지 하면 미국의 유명 기관들이 떠오르고, 저 또한 연수지를 알아볼 때 미국 서부의 기관들을 우선 순위로 두었지만, 최근 급격히 바뀐 미국 내 분위기와 까다로워진 비자 발급 등의 이유로 다른 곳을 알아 보았습니다. 때마침 2년 전 먼저 MSPGH로 연수를 다녀오신 명지병원 신혁재 선생님의 권유와 소개로 John Hopper 박사님과 연락이 되었고, 어렵지 않게 행정적인 절차를 진행하였습니다.

 


MSPGH는 University of Melbourne 부설 기관으로 건강 증진을 위한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수행하는 곳입니다. MSPGH는 7개의 연구소로 나뉘어져 있고, 제가 1년 간 연구를 한 곳은 감염병을 비롯한 급성 질환부터 암을 비롯한 만성 질환까지 다양한 역학 연구를 수행하는 Centre for Epidemiology & Biostatistics (CEB)입니다. 90여 명의 교수, 연구원으로 구성된 CEB에서 유방암과 대장암에 대한 다양한 분야의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평소 임상에서 유방암 환자를 대할 때, 더 나은 치료 방법에 대한 고민은 많았지만, 왜 이 환자에게 유방암이 발생하였을까 하는 고민은 상대적으로 적었던 차에 이러한 연구를 할 수 있는 연구소가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특히 관심이 있던 유방 밀도 (breast mammographic density), 체질량 지수 (BMI) 와 유방암 발생의 상관 관계에 대한 선도적인 연구를 수행하는 MSPGH의 CEB는 연수지로는 최적의 연구소였습니다.

연수 준비 과정은 다른 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계절이 우리나라와 반대인 관계로 2월부터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어 1월 중순에 출국하는 일정으로 준비하였습니다.

 

2. 연수 내용

호주의 의료 제도는 영국과 거의 비슷하여 공공 의료기관이 대부분으로, 1차 진료 후 진단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려 치료가 다소 늦어질 수 있는 단점이 있는 반면, 질병 발생에 대한 역학 연구와 예방에 대한 분야는 연구 결과를 바로 정책에 반영하여 건강 증진에 대한 가시적인 효과를 빨리 보여주고, 질병 발생률을 낮춤으로써 세계를 선도하는 그룹에 속해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흡연이 폐암을 비롯한 건강에 유해한 것으로 밝혀진 이후로 담배 가격을 지속적으로 인상함으로써(현재 한 갑에 25000원 정도) 흡연 인구 비율을 획기적으로 낮추어 만성 호흡기 질환을 비롯한 폐질환과 폐암을 비롯한 여러 암종의 발생률을 낮추는 보건 정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유방암과 관련해서도 기존에 알려져 있는 위험 인자들뿐만 아니라, 유방 밀도와 유방암 발생에 대한 연관성을 확립하였고, 이를 위험 인자로 간주하여 최근 유전자 분석을 포함한 대규모 코호트 연구를 진행 중인데, 이 연구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곳이 바로 CEB 입니다. 호주 유방암 환자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환자-대조군 코호트를 유방촬영 영상과 함께 Cumulus software를 이용하여 분석 중에 있습니다. 저도 이 팀에서 PI Hopper 박사님, 수석 연구원 Kevin 박사와 함께 연구를 수행하였고, 연수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연구팀과 함께 우리나라 여성을 대상으로 유방 밀도와 유방암 위험도의 연관성을 규명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운 좋게도 Hopper 박사님이 한 학기 동안 Epidemiology와 Biostatistics 두 과목의 대학원 과정을 청강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셔서 목마름이 있던 분야를 탐구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아울러 그 동안 접해보지 못했던 STATA 라는 사용자 친화적인 통계 프로그램을 사용해볼 수 있었던 것도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3. 멜번 (Melbourne) 생활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어우러져 사는 이민자의 나라 호주, 호주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1위 멜번에서의 1년은 정말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은 것 같습니다. 연수 이전에 한 번도 가본 적 없었던 호주였지만, 도착 당시의 화창한 여름 날씨와 청량한 하늘과 맑은 공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 사람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로 처음부터 적응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멜번 시내에서 15km 정도 떨어진 Caulfield에 2 bedroom APT를 얻었고, 아내, 중학생 첫째 딸아이, 초등학생 둘째 딸아이와 함께 호주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2018년 테니스 오픈 첫 대회인 호주 오픈(AO)에서 정 현 선수의 준결승 진출 그리고 이어진 평창 동계 올림픽을 보면서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느꼈고, 아이들의 학교 생활 적응도 순조로웠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있을 때는 잘 몰랐던 방탄소년단(BTS)의 인기를 호주에서 경험하게 되었고, BTS 덕분에 아이들의 학교 생활이나 친구를 사귀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호주의 학기제는 2학기 4텀으로 되어 있고, 새로운 학년을 1월 마지막 주에 시작해서 10-11주의 한 텀이 끝나면 2주 간의 방학 (school break)이 있는 시스템입니다. 우리나라의 중고등학교에 해당하는 secondary college –처음에는 대학으로 착각- 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1학기 동안 language course를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되어서 큰 아이는 1년 동안 두 군데의 학교를 다녔고, 귀국 후 한국 학교의 진학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학력 인정이 모두 되는 학교로 아무런 문제 없이 재입학 하였습니다.

 

멜번 생활에서 불편했던 점들은 차 주행방향과 운전석의 위치가 우리와 반대여서 적응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과 hay fever와 같은 알러지 질환이 흔하다는 것입니다. 아내가 두 달 정도 반복되는 알러지로 고생했는데, 귀국 후 우리를 맞이한 미세먼지보다는 그래도 깨끗한 공기가 훨씬 나았던 것 같습니다. 호주의 물가가 비싸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전기, 수도, 대중 교통비는 확실히 비쌌지만,수 년 전부터 호주 환율이 낮아졌고(1호주달러=800원 대), 팁 문화가 없어서 생활비가 많이 드는 편은 아닙니다. 

4. 맺음말

사람보다 동물의 수가 훨씬 많고, 다른 대륙에서 볼 수 없는 캥거루, 코알라 등의 유대류의 서식지이면서 광활한 초원과 Uluru, 12 Apostles, Tasmania 등 수려한 자연 경관을 간직한 나라인 호주는 호주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신이 내린 축복의 나라였습니다. 이렇게 좋은 곳으로 가족과 함께 연수를 다녀올 수 있게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제 후임으로 MSPGH에서 연수 생활을 막 시작한 부산대병원 김현열 선생님과 가족분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면서 연수기를 마치겠습니다.